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쿠라다 문 밖의 변 (문단 편집) == 사건 발생 == 3월 24일 아침[* 음력으로 3월 3일, [[히나마쓰리]] 날 이었다. '복숭아의 절구'라 해서 에도 성에서 연례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다이묘와 가신들이 입성한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이들은 토카이도 [[시나가와]]에 있던 숙소를 출발해 사쿠라다 문 쪽으로 집결했다. 이이 나오스케도 에도에 있는 히코네 번 저택을 출발해서 500미터 떨어진 에도 성으로 입성하는 중이었다. 그날 아침 이이 나오스케를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들어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로 경비를 강화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이 나오스케는 경비를 강화하지 않았다. 히코네 번의 가마 행렬은 약 60명 정도였지만 경호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때마침 그날은 봄철인데도 폭설이 내려 시야가 나빴고 사람들은 비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습격하는 쪽에서는 칼을 비옷 속에 숨길 수 있어 습격하기에 용이했다. 다이묘들의 입성 행사는 당시 일본에서 구경거리였기에 길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오전 9시. 가마가 가까워지자 미토번사 모리 나오나가([ruby(森,ruby=もり)][ruby(直,ruby=なほ)][ruby(長,ruby=なが)])[* 통칭은 고로쿠로(五六郞) [[https://kotobank.jp/word/森五六郎-1115656|출처]]]가 뛰쳐나와 가마행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를 저지하려고 히코네 번의 쿠사카베 요시타츠([ruby(日下,ruby=くさか)][ruby(部,ruby=べ)][ruby(令,ruby=よし)][ruby(立,ruby=たつ)])[* 통칭은 사부로우에몬(三郞右衛門) [[http://www.ii-museum-old.jp/27nendo2.html|출처]]]가 다가가자 갑자기 그가 칼을 빼들어 쿠사카베 요시타츠를 베어버렸다. 이는 가마 앞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게 하려는 미끼였다. 놀란 경호원들이 가마 앞쪽으로 달려나가자 경호가 허술해진 틈을 타서 쿠로사와 마사카즈([ruby(黑,ruby=くろ)][ruby(澤,ruby=さわ)][ruby(勝,ruby=まさ)][ruby(算,ruby=かず)])[* 통칭은 츄사부로(忠三郞) [[https://kotobank.jp/word/黒沢忠三郎-1072802|출처]]]가 가마를 향해 권총[* 현대 연구에 따르면 [[콜트 리볼버#콜트 1851 네이비|Colt M1851 'navy']]의 복제품으로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암살을 위해 하사한 것이었다.]을 발사했다. 이것을 신호로 남은 이들이 칼을 빼들고 달려들어 검투가 벌어졌다. 가마에 탄 이이 나오스케는 총에 맞아 [[대퇴부]](허벅지)에서 허리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습격에 놀란 주변 사람들과 가마꾼들, 히코네 번의 가신 대부분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고 가신들 몇 명만 남아 어떻게든 가마를 끌고 이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려고 애썼지만,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가마를 어찌 끌고 갈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가마는 눈밭에 방치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히코네번의 호위무사들은 칼에 습기가 차는 것을 막으려고 손잡이에 자루를 씌워놓았기에 대응이 늦었다. 그럼에도 히코네번 최고 검객이라 불리던 카사이 요시유키([ruby(河,ruby=か)][ruby(西,ruby=さい)][ruby(良,ruby=よし)][ruby(敬,ruby=ゆき)])[* 통칭은 츄자에몬(忠左衛門) [[https://ameblo.jp/yachtman/entry-10167908214.html|출처]]]는 침착하게 비옷을 벗고 칼을 빼서 가마 곁으로 다가오는 이나다 마사타츠([ruby(稻,ruby=いな)][ruby(田,ruby=だ)][ruby(正,ruby=まさ)][ruby(辰,ruby=たつ)])[* 통칭은 쥬조(重藏) [[https://www.wul.waseda.ac.jp/kotenseki/html/chi03/chi03_03539_0022/index.html|출처]]]를 쓰러뜨려서 자객들을 놀래켰다. 하지만 카사이 요시유키는 [[중과부적]]으로 죽었다. 또한 젊은 검객 나가타 마사나리([ruby(永,ruby=なが)][ruby(田,ruby=た)][ruby(正,ruby=まさ)][ruby(備,ruby=なり)])[* 통칭은 타로베에(太郞兵衛) [[https://ameblo.jp/yachtman/entry-10167908214.html|출처]] 통칭과 달리 이름은 한자로 쓰되 일본어로 [[훈독]]하지만 거의 [[후리가나]]가 안 달려서 어떻게 읽는지 불확실해서 몇몇 이름은 틀릴 수 있으니 주의]도 열심히 맞서 싸웠지만 총상이 심해 결국 죽고 말았다. 이때 쓰인 가사이 요시유키의 검과 나가타 마사나리의 검, 투구, 갑옷이 현재 [[히코네 성]]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결국 호위들마저 죄다 죽자 미토 가신들이 중상을 입은 이이 나오스케를 가마에서 거칠게 끌어냈다. 나오스케가 무의식적으로 땅을 걸으려 했지만 곧 사쓰마 탈번 낭인 아리무라 카네키요([ruby(有,ruby=あり)][ruby(村,ruby=むら)][ruby(兼,ruby=かね)][ruby(淸,ruby=きよ)])[* 통칭은 지자에몬(次左衛門) [[https://ja.wikipedia.org/wiki/有村次左衛門|출처]]]의 칼에 목이 잘렸다. 이들은 나오스케의 목을 칼 끝에 꽂아 돌아오려 했지만 쓰러진 히코네번의 코가와라 무네치카([ruby(小,ruby=こ)][ruby(河原,ruby=かはら)][ruby(宗,ruby=むね)][ruby(親,ruby=ちか)])[* 통칭은 히데노죠(秀之丞) [[https://ameblo.jp/yachtman/entry-10167908214.html|출처]] [[宗]]과 [[親]]은 일본 이름에서 [[훈독]]이면 [[후리가나]]가 다른 게 있을 수 없기에 이건 확실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덤벼들었다. 히데노조는 아리무라의 뒤통수를 베어 중상을 입혔으나 히로오카 노리노부([ruby(廣,ruby=ひろ)][ruby(岡,ruby=をか)][ruby(則,ruby=のり)][ruby(順,ruby=のぶ)])[* 이름이 마사노리(政則)라는 설도 있다. 통칭은 네노지로(子之次郞)고 하야시 요시부미(林以文)의 둘째 아들이며 히로오카 노리타카(廣岡則孝)의 양자다. [[https://mo6380392.exblog.jp/26675764/|출처]]]에게 베여 쓰러졌다. 히코네 번 저택에서 사태를 알고 가문의 병사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사건은 끝난 뒤였다. 이들은 사건 현장을 보고 경악하였으나 수습에 나섰는데 철저하게 잘린 손가락 하나까지 회수했다. 뺏긴 이이 나오스케의 목은 그와 체격이 비슷한 가타 구로타의 목으로 속여서 바꿔치기해 겨우 회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